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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책

# 공책
오래된 상자를 정리하다 녹슨 고리가 달린 공책을 찾았다. 검은 표지는 벗겨지고 구석이 말려 있었다.
펼쳤을 때 놀랐다. 내 손글씨가 가득했다.
고등학교 때 쓴 수학 노트였다. 공식이 줄줄이 적혀 있고, 여백에는 낙서가 수놓아져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누군가의 번호가 적혀 있었다. 아래에는 내 붉은 펜으로 "안 본 척"이라고 써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이제도 기억난다. 옆자리였던 그 사람.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갑자기 글씨가 달라져 있었다. 작아지고, 흐릿해지고, 경사가 기울어져 있었다. 날짜를 보니 3개월 뒤였다. "요즘 뭐 할 생각만 해"라고 썼다. 그다음은 "엄마가 또 싸웠어".

공책을 덮었다. 손이 떨렸다.
그 해 여름, 나는 그 사람을 놨다. 아무 말도 없이.
공책 위에 먼지가 내려앉았다. 20년이 그렇게 앉아 있었구나. 내 손글씨 위에, 그 사람의 울음 위에.
상자에 다시 넣으려던 손이 멈췄다. 대신 책장에 꽂았다.
잊으려고 했던 것들은 가끔, 가장 오래된 것들 속에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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