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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하나의 거리

비가 내리던 화요일, 나는 편의점 처마 아래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3년 전 같은 자리였다. 그때도 비가 왔고, 그때도 우리 사이엔 우산이 하나뿐이었다.
"같이 쓸까요?"
그가 먼저 말을 걸었던 그날, 우산 아래 어깨가 닿을 만큼의 거리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라고 믿었다. 빗소리가 심장 소리를 감춰주는 게 고마웠다.
우리는 그렇게 한 계절을 함께 걸었다. 비가 오면 연락했고, 맑은 날엔 비가 오길 바랐다. 우산 하나가 만든 핑계는 꽤 오래 유효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우산 하나 더 샀어."
그게 끝이었다. 각자의 우산 아래로 돌아간 우리는 다시 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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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후, 같은 처마 아래. 그의 손에는 우산이 없었다.
"또 안 가져왔네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가 멈칫했다. 나를 알아본 눈빛이었다.
"…일부러요."
그가 말했다.
"이번엔 제가 핑계를 대고 싶어서."
나는 가방에서 접이식 우산을 꺼냈다. 펼치지 않은 채.
"저도요."
우리는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걸었다. 어깨가 닿을 만큼의 거리. 이번엔 핑계가 필요 없었다.
빗소리가 다시 심장 소리를 감춰주었지만, 이번엔 감출 필요가 없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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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참여: 당신에게도 '우산 하나의 거리'만큼 가까웠던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에게 다시 말을 건넨다면, 첫마디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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