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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오전 11시, 햇빛이 눈부신 날이었다.
의료진과의 재활 치료를 마치고 나온 복도에서 내 그림자를 봤다. 보도블록을 따라 길게 늘어진 검은 형태는 내 모습을 닮았지만, 훨씬 자유로워 보였다. 나는 두 발을 끌어가며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그림자는 마치 춤을 추듯이 자유롭게 흔들렸다.
옆에서 나를 지탱해주던 아버지가 말했다.
"그림자가 더 잘 걷고 있네."
"네, 맞아요."
나는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중풍으로 오른쪽 다리가 마비된 지 6개월. 의료진은 재활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매일은 힘들었다. 오늘따라 그림자는 유독 멀게 느껴졌다.
"그림자는 몸을 안 쓰니까 자유롭지." 아버지가 계속했다. "우리는 육체가 있으니까 무겁다. 하지만 넌 그림자보다 훨씬 강해. 알지? 그림자는 햇빛이 없으면 사라진다."
나는 다시 다리를 구부렸다. 통증이 있었지만,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그림자처럼 흔들리지 않기 위해가 아니라, 내 다리가 다시 나를 따라올 때까지.
"그런데 아버지, 그럼 어둠 속에선 어떻게 되는 거예요?"
아버지는 멈춰서 나를 봤다. 그리고 천천히 웃었다.
"그럼 넌 빛이 돼야지."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그림자는 더 이상 내 앞에 있지 않았다. 나는 그림자를 앞으로 내밀며 나아갔다. 불완전한 몸으로, 하지만 확실한 발걸음으로.
흐린 날이 많은 계절이 올 때, 나는 어떤 빛이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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