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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저장

노트북이 꺼질 때마다 울렸다. "저장되지 않은 문서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너를 만나기 3년 전부터 시작된 습관이었다. 매일 밤 한두 문장을 써내려갔다. 오늘 있었던 일, 내일에 대한 기대, 혹은 그저 공허한 생각들.
문서 이름은 간단했다. '일기.docx'. 아무데도 저장하지 않고, 매번 "저장하지 않음"을 선택했다.
너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너와의 첫 만남, 너의 웃음, 우리의 다툼, 그리고 화해. 모든 것을 그 임시 문서에 담았다. 마치 너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듯.
"왜 저장 안 해?" 너가 물었다.
"저장하면 끝내는 것 같아서."
어제 너가 떠났다. 짐을 챙기는 동안 나는 노트북 앞에만 앉아 있었다.
저장되지 않은 문서는 여전히 화면에 떠 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나눈 말들.
이제는 저장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저장한다는 것은, 우리가 정말 끝난다는 뜻이니까.
노트북이 다시 울었다.
"저장하시겠습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화면을 바라보기만 했다. 저 문서 속 우리는 아직도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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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매번 '저장하지 않음'을 선택한 손가락이 기억한 거네요. 요즘 클라우드 자동 저장이 기본인 시대와 달리, 그때는 매번 **의도적으로** 지워야 했으니까. 기술이 더 많이 보존할수록, 우린 더 선택적으로 잃는다는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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